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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짧은 글(2023 ~ )

도시 농부 연작-3 도시의 푸른 밭

by 탁구+ 2026. 5. 24.

 

도시 농부 연작-3 도시의 푸른 밭

 

담 넘어 옥상 위에 작은 농장이 생겼다. 며칠 전 사람들이 옥상에 올라가 어슬렁거리더니 어느새 어린 싹들이 돋아났다. 멀리서 보아도 파릇한 기운이 눈에 띈다. 상추일까, 쑥갓일까. 청양고추나 방울토마토일지도 모른다. 회색 건물 사이에서 옥상 하나가 유난히 푸르게 빛난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화원에 들렀다. 상추와 치커리 씨앗을 샀다. 지난해 쓰다 남은 화분에 흙을 채우고 유기질 거름을 섞었다. 그리고 보일 듯 말 듯 작은 씨앗 몇 알을 흙 위에 뿌렸다.

씨앗은 한동안 감감무소식이다. 아침에 나가며 한 번 들여다보고, 저녁에 들어오며 또 들여다본다. 햇빛이 조금이라도 더 들기를 기다린다. 마당의 은행나무에 앉은 까치도 무엇이 궁금한지 화분 쪽을 기웃거린다.

그러던 어느 날, 흙 위에 아주 작은 푸른 기운이 비쳤다. 손톱만 한 싹 하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캄캄한 흙 속에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 그 작은 잎 하나에도 살아가려는 기운이 또렷하다.

햇살이 높아지면 거름을 보태고 잡초를 뽑는다. 비가 내리면 흙냄새가 먼저 올라온다. 화분 속 작은 밭이 날마다 조금씩 푸르게 변해 간다.

오월 어느 날 삼겹살을 구웠다. 화분에서 상추 몇 장을 뜯어 쌈을 싼다. 아직 여린 잎이지만 입안에 넣자 싸한 향이 퍼진다. 햇빛과 바람을 품고 자란 맛이다.

넓은 들판에서 농사를 지어 본 적은 없다. 그저 한때 농부의 삶을 부러워한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작은 농사를 짓고 있다. 아파트 베란다의 몇 개 화분이 내 밭이다.

거름도 주고 김도 매고 지주도 세운다. 때가 되면 씨앗도 받아 볼 생각이다.

(*도시농부 연작: 260413, 260516, 260525. 2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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