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를 걷다 / 여행 후기
이번 여행은 잠시 겨울 추위도 피할 겸 따뜻한 남쪽 지역에서 걷고 먹고 쉬는 것으로 했다. 관광이나 골프 등 목적을 가진 여행이 아니라는 뜻이다. 현지 날씨가 11월에서 1월까지가 건기로 가장 화창하고 온화한 날씨라기에 이 기간을 잡았다. 이 기간 외에는 우기라고 한다.
현지에서 무엇을 할지 방황하지 않을 만큼의 정보만을 가지고 떠났다. 그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관광지이든 골목길이든 걷거나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온전히 현장 중심의 여행이다.
방황하지 않을 만큼의 정보는 여유가 된다면 주민의 생활문화, 음식문화를 체험해 보기로 했다.
음식문화는 열대 지방으로 재료가 풍부해서인지 듣던 대로 발달하였다. 길거리 야시장에서부터 고급식당까지 부담 없이 다녔다. 가성비가 매우 좋았다. 야시장에서는 한화로 2,000원에서 조금 나은 식당에서는 10,000원 정도면 된다.
문화는 전 국민의 98% 정도가 불교도로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사원이 있고 어떤 사원은 규모가 웅장하고 외부 마감이 화려하다. 정치 제도는 입헌 군주제이나 현재는 군인이 집권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왕과 왕비의 초상이나 동상을 볼 수 있으며 승려와 왕과 왕비에 대한 국민들의 경외심은 대단하다.
사람들은 매우 순박하고 친절하다. 억지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 것 같다. 깊게 뿌리박은 불교 신앙과 열대 기후의 풍부한 자연 자원으로 언제나 먹고 산다는 것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거론할 필요도 없이 먹고 산다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욕심이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정치나 사회면에서 약간의 혼란스러운 면도 있다지만 그것은 세계적인 정치 사회문제의 연장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거의 매일 아침 호텔 주변의 동네를 걷고 로컬 마켓을 거처 사원엘 들러보았다. 처음에 사원의 모습은 조금 거리감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분주하지 않고 조용한 환경이 평화로웠다. 길게 펼쳐 놓은 거리의 로컬 마켓에서는 생필품, 먹거리가 풍부하고 상인들은 애써 경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은 돈에 대한 욕심이라든가 위생에 대하여는 조금 덜 민감한 나라임을 느낀다.
처음 약간 거부감을 느꼈던 사원은 도시를 돌아보면서 도시 곳곳의 사원과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신앙심에서 나도 자연스럽게 동화 되어갔다.
원도심(old town)의 '왓프라싱' 사원과 '왓쩨디루앙' 사원 등 몇 곳의 사원은 규모도 대단하고 건축양식도 대단히 화려하다. 몇 동의 건물은 아예 건축물 전체를 금박으로 마감한 곳도 있다. 우리는 쨍한 햇살이 비치는 금박 건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저녁에 들린 외곽의 도이스텝은 더욱 대단하다. 규모도 웅장하지만 금박으로 건축된 건축물의 양식도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거대한 하나의 금 장식품 그 자체였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깊은 신앙과 오래된 전통과 국가적 정체성이 내재된 것으로 본다. 이러한 불교문화에 경건함을 느꼈다. 야간에 오른 도이스텝은 불빛에 비친 화려한 건축물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야경으로 꼭 들릴만한 곳이다.
주간에는 주로 ‘원도심’과 ‘님만해민’에서 보냈다.
원도심( old town) 지역은 원래의 전통도시로 사각형의 해자를 두른 성곽을 비롯한 유적이 있고 오래된 사원이 매우 많다. 시내와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본다. 우리의 중소도시 마을과 비슷한 느낌이다. 점심으로 맛 집이라는 ‘불루누들’에서 고기국수를 먹고 이 곳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발 마사지를 받고 부근 재래시장을 구경하고 옛 성곽의 출입문 '타패게이트' 부근 광장에서 여유시간을 보냈다. 치앙마이대학과 예술 공방 마을 반캉왓도 들렀다.
님만해민 지역은 현대적 대형 쇼핑몰 '원님만'과 '마야몰'이 있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골목길이 있다. 쇼핑과 식당 카페 등이 있는 골목이다. 우리의 강남구 신사동 같은 곳이다. 요즘의 생활 문화란 거의 이런 곳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식품은 저가이며 공산품과 유명 커피점 등 외래 문물은 거의 우리와 같다. 인테리어 등에서도 세계가 하나임을 다시 느낀다. 우리의 라면이 역시 이곳에서도 인기다.
날씨는 기온이 가장 높은 오후 2-3시 대가 28-30도 정도이지만 더위를 심하게 느낄 정도는 아니다.
저녁에는 야시장으로 갔다. 이곳은 야시장이 매우 발달했다. 먹거리뿐만 아니라 생필품, 기념품을 팔고 엄청난 관광객으로 붐빈다. 우리는 인파들 사이에 끼어 식사를 하고 쇼핑을 겸하여 인파에 밀려다녔다. 여러 곳의 야시장을 다녔지만 치앙마이대학 부근의 야시장과 새러데이마켓 야시장이 특별히 크고 사람들이 많았다.
일정 중 하루는 부근 높은 산 트레킹으로 했다. '도이인타논'의 '끼우매판' 코스를 택했다. 끼우매판 코스는 해발 2560m(?) 정도로 히말라야의 한 자락(?)이라고 한다. 힘든 코스는 아니다. 고지대까지 왕과 왕비를 위한 장수기념탑이 웅장하게 건축되어 있다. 그곳 까지는 자동차로 이동하게 됨으로 트레킹 코스는 상대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함께 끼우매판 정상에 오르니 안개가 자욱이 덮이고 멀리 높은 산의 머리는 눈인지 구름인지 희게 빛난다. 정상에서 깊이 내려다보이는 계곡은 매우 아름답다. 드문드문 들과 강과 마을로 보이는 평면이 펼쳐진다.
아무런 계획이 서지 않은 시간은 식사 후 호텔 부근의 동네를 천천히 돌았다. 마을이 조용하고 깨끗하다. 이 나라는 각박하지 않다. 풍요롭지는 않더라도 이웃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살기 좋다는 표현이 좋을까. 이곳에서 '한 달 살기'나 아예 이주하여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많이 만났다. 좋은 기후로 건강에 좋고 물가가 싸기 때문에 살기 좋다고 한다. 나도 조금 장기로 눌러 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한 두어 주일만 더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은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2025.1.15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