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짧은 글 쓰기

개원사 가을

탁구+ 2024. 11. 12. 09:26

 
개원사 가을 /김탁기
 
계곡에 억새가 저리
흔들리는 것은 바람 때문이고
바람이 저리 부는 것은
억새가 울기 때문이다
개원사 감나무에 까치가
저리 요란한 것은
서산에 노을이 붉어지고
감이 빨갛게 익었기 때문이다
절 마당이 분주한 것은
산그늘 깊은 텃밭에
배추 무가 더욱 깨끗하고
가지런하기 때문이다
스님이 마당가에서
묵언수행에 드신 것은

일주문 옆 은행 알이
후드득 떨어지기 때문이다
산그늘은 더욱 깊어지고
산 바람은 더욱 차갑다
바람 불지 않아도 억새
흩어지고 억새 울지 않아도
바람소리 서럽다
내가 이리 앓고 있는 것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억새가 울지 않아도
땅 그늘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2024.11.12 하루 한 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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