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긴글 쓰기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 / 김탁기

탁구+ 2020. 3. 8. 19:39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나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항상 향기가 난다. 결코 꾸미지 않은 부드러운 표정에 옅은 미소로 차분하게 나누는 말씨에서 인품을 느낄 수가 있다. 물론 유쾌한 대화를 나눌 때에는 막말을 하기도 하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고 대화가 끝난 후에도 기분 좋은 여운이 남는다. 그래서 깊은 인품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

사람에게서는 이런 향기가 나야 한다. 결코 인공의 향수 냄새가 아닌 고운 심성을 바탕으로 깊은 지성에서 나오는 인품의 향기 말이다.

 

향기에는 종류가 있다. 우선 자연에서의 향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향기에는 숲의 향기를 들 수 있다. 숲 속에 들어서면 코끝을 스치는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

특히 소나무 과의 침엽수림에서 느끼는 진한 피톤치드의 향기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맑게 한다. 또한 이 피톤치드는 살균효과도 있다.

우리 강산 지천에 침엽수가 있지만 경험으로 보면 춘양목으로 유명한 봉화의 홍송 숲길이 으뜸이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솔향기를 맡을 수가 있다. 수백 년 수령의 깊은 홍송 숲 속을 들어서면 기분이 맑아지고 점차 코끝을 스치는 솔향기를 느끼게 된다. 덧 붙여 홍송에 대한 목재로써의 역사적 쓰임새까지를 새기노라면 깊은 향기에 취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의 전나무 숲길, 장성의 편백나무 숲, 서울에서는 남한산성의 소나무 숲, 남산의 소나무 숲 등의 군락지가 순간적으로 생각난다. 소나무 숲엘 들어서면 어디선가의 익숙한 내음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분을 좋게 한다.

 

반면 봄날의 라일락 향기도 좋다. 향기가 강하기는 하지만 코끝을 스치며 어디선가 춤추듯이 날아오는 내음은, 좋은 사람들과 호프라도 한 잔 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고, 멀리 여행이라도 가고 싶어 진다. 계절적인 희망이 솟아나는 것이다. 라일락을 시작으로 본격 향기의 향연이 시작된다. 자연은 기지개를 마음껏 켜며 새순이 솟아나고 꽃들도 함께 핀다. 꽃 중에는 가장 화려한 향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느껴진다.

 

여름에는 비릿한 바다 냄새가 좋다. 항구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 활력을 느끼고 철석이며 몰려오는 파도에서 힘찬 젊음을 느끼며 많은 추억들을 만든다. 이 시간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던 저녁 시간들이 각별하게 생각난다. 어느 바닷가에서는 조약돌이 파도에 구르는 그 소리도 참 좋았다.

그리고 가을의 낙엽 타는 냄새도 좋다. 어떤 글에서 읽은 적이 있기도 하지만 실재 낙엽을 태우면 그 구수한 내음이 커피 향 같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나는 냄새이다.

 

그리고 보니 추억의 냄새로는 나만의 독특한 내음이 있다. 봄날의 보리 들판에서 날아오는 그 특유의 가벼운 분뇨 냄새이다. 많은 사람들은 싫어하겠지만 나는 여기서 추억과 향수를 느낀다. 어쩌면 푸근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이 보리밭 부근으로 시오리 초등학교를 다녔다. 언제인가 화창한 봄날, 보리밭이 펼쳐지는 들판을 차창을 열고 손을 뻗치며 달리던 오래지 않은 추억도 있다.

 

나는 가공의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 담배 냄새이다. 한 때 담배를 피우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는 극히 싫어졌다. 가까이에서 피는 냄새도 싫지만 가로에서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도 역할 때가 있다. 그리고 보니 사람의 간사함이 냄새를 맡음에도 있나 보다.

또한 나는 화장품으로써의 향수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향수도 있다. 향수의 기원은 무척 오래된 것 같다. 수천 년 전의 서양의 기록에서도 나오고 중국의 역사적 기록에서도 나온다. 물론 우리 역사적 기록에도 있을 것이다.

 

한 때에는,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향수는 선물로도 많이 쓰였다. 지난날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람들의 마음이 강해져서 인지 향수도 나날이 강해지는 것 같다. 그것도 강한 향수가 대체적으로 더 고급으로 비싸다고 하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

대체적으로 냄새에 민감한 탓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보면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이곳에서 맡은 냄새가 저쪽에서 또 맡게 된다. 사람의 구분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같은 향수를 쓰니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의 가공스러움이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는 한 로션도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사용한다.

 

사람에게서는 그 독특한 인품의 향기가 나야 한다. 고매한 인품에서 풍기는 온화한 향기가 있고 단순하고 강한 성격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분위기가 있다. 온화한 인품에서 나오는 향기는 부드럽고 우아하여 가까이하게 되고, 투박한 성격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거칠어 피하고 싶어 진다. 깨끗한 외모에 수반하여 온화한 표정에 깊은 지성이 동반된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도 그 깊은 품격 속으로 잠겨 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시간 후에는 마음이 가볍고 유쾌하다.

사람에게서는 인공이 아닌 인품의 향기가 나야 한다. (20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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