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긴글 쓰기

세상에 태어났으면 할수 있는 일은 다해야지

탁구+ 2011. 12. 19. 20:20

옛날 과거장에서의 얘기입니다. 요즘 같으면 필기시험을 마치고 임용을 위한 면접 시험장 같은 곳이었겠지요.

최종 등과를 위해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을 통과한 선비들을 앉혀놓고 정승이(시험관)  ‘이제 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 한 가지씩을 이야기 해보라’ 고 했지요. 여러 선비들이 각자 자기들의 소신과 경험을 자랑스럽게 전개하였습니다.

그중에 학문시험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한 선비의 이야기입니다.

 

이 선비는 영남에서 서울로 과거를 보기위해 몇 날을 걷던 중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습니다.

캄캄한 밤, 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멀리 불빛이 보였습니다. 반가이 기와집 한 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리 오너라!’ 대문을 두드렸으나 기척이 없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대문 안에서 마지못한 듯 겨우 한 여인네의 목소리가 들려 왔고 선비는 산중에서 길을 잃었으니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청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라고 거절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비는 지치기도 하였거니와 첩첩산중에서 위험하기도 하여 체면 불구하고 계속 사정을 하여 겨우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여인이 밥상을 보아 왔고 시장했던 선비는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우선 식사부터 하였습니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리는데 상을 물려 나가는 여인네를 보니 무척이나 기품이 있고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선비는 피곤하기는 하였지만 '집 떠나 온지도 오래 되었고, 깊은 산중 깊어가는 밤, 그것도 집은 크지만 사람의 기척이 없는 곳에서 혼자 사는 것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라........’  이런 저런 생각과 합쳐져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문밖에서 기척이 들리고 문이 살짝 열리며 한 여인이 술상을 봐 가지고 들어오는 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조금전 여인보다가 앳되고 한층더 아름다운 여인이 살포시 들어 와 술상을 앞에 놓고 살짝 비켜 다소곳이 앉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뽀얀 피부와 향긋한 냄새, 맨살이 살짝 비추이는 듯한 옷 매무새, 황홀경에 침이 꼴깍 넘어가고 숨이 턱 막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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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뜩한 한 순간이 지나갔습니다. 선비는 한동안 넋을 놓았다가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현재의 상황, 이 여인이 원하는 바를 알 것 같았습니다. 선비는 정신을 가다듬고 '선비로서의 정도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 비록 집 떠나온 지 오래 되었으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몸, 그대의 뜻은 알겠으나 선비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하겠소이다.” 순간 그 여인은 아무 소리 없이 뒷걸음으로 방을 물러났습니다.

선비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몇 잔의 술을 자작하며  '아차 잘못하면 도리를 지키지 못할 뻔했다' 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아쉬움 또한 컸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상을 물리려는지 밖에 다시 기척이 났습니다. 그리고 여인이 들어오는데 다른 여인이었습니다. 처음 밥상을 내어오던 여인으로 조금 전에 왔던 여인보다 약간 나이가 든 듯도 하였으나 농익은 맵시가 정말 아름다운 절세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을 물리러 온 것으로 생각 했는데 이 여인 역시 한걸음 물러나서 다소곳이 기다리는 듯 한 자세로 앉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비에게서는 참을 수 없는 정념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선비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내 보니 범상한 집안은 아닌 듯한데 무례가 심한 것이 아니오?"  이 여인 역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뒷걸음질로 방을 나갔습니다.

 

선비는 그 밤을 그럭저럭 새우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길을 떠나기 전에 인사를 하려고 헛기침을 하였으나 안채에서는 역시 조용하기만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두 여인이 숨져 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유서가 있는데

‘두 여인은 고부간으로 지아비와 하나뿐인 아들마저 일찍 여의고 두 여인만이 살아오고 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상의 제사를 모실일이 걱정이 되어 생각다 못해 선비님께 후사를 얻어 보려고 하였으나 선비님의 굳은 의지를 보고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여 세상을 하직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비의 긴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집 떠난 건장한 젊은이로서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으나 선비의 도리로서 유혹을 이겨냈다는 장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감동 깊게 들은 정승은, 그러나 이 학문과 심지가 굳은 젊은 선비를 낙방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승이 벼슬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벼슬길에 나서지를 못했습니다.

 

정승의 뜻은 ‘참된 선비라는 것은 학문과 도덕, 규범을 존중하는것이 중요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시의에 맞는 역할과 도리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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