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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기의 블로그(2006년부터) - 길을 걷다
시 & 짧은 글(2023 ~ )

톱니바퀴처럼 돌다

by 탁구+ 2026. 5. 4.

 

톱니바퀴처럼 돌다

 

톱니바퀴들이 서로의 이를 물고 돌아간다. 우리는 그것을 끝없는 회전이라고 보았고, 그저 일상의 당연한 운동이라고 깊은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지나간 시간들은 기름처럼 흘려보내고, 다가올 날들은 또 하나의 톱니라 여기며 조심스레 맞추어 끼운다. 삶은 늘 내일을 향해 돌아간다. 잠시라도 멈추는 일은 낭떠러지 앞에 선 것처럼 막막했고, 작은 바퀴와 큰 바퀴가 서로를 안듯 맞물려 돌아가는 시간들이 그렇게 이어졌다.

 

그런데 이제야 멀리 등대 하나 보인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돌고 있다고 믿었지만, 내일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던 그 순간은 이미 어디쯤에서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시간은 손가락 몇 번으로 천천히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조용하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돌았던가, 무엇을 이루려 이렇게 오래 맞물려 있었던가 하는 질문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삶에서는 사실 모든 순간이 이미 가장 귀한 순간인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바퀴는 힘차게 돌며 어느새 언덕을 넘고 있었지만 그 움직임은 여전하여 아무렇지 않게 이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가 멈춰 서서 잠시 숨을 고를 때에, 아, 이렇게 여기까지 왔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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